2016년 3월 7일 월요일

陽卦多陰章09 知幾其神 (삼화 한장경)

陽卦多陰章09

子曰知幾其神乎 ... 知微知彰知柔知剛萬夫之望






이는 豫六二爻의 解釋이오 震子의 奮出함을 말한 것이다.
六二爻의 解釋에 「易曰」이 있는 것은 日月變化의 象이 있는 까닭이다.
豫卦는 一陽이 中爻에 있고 震子가 坤母로부터 奮出하여 河圖時運으로부터 洛書時運으로 옮기는 때에 長의 時運의 달의 始生하는 象이 되므로 天地가 順으로써 動하여 日月이 過치 아니하고 四時가 忒치 아니한다 한 것이며 六二는 生의 中心에 있어 달의 幾微하는 位로 되는 것이다.

 
石은 艮의 象이오 介는 成終成始하는 交界이다. 地中에서 奮出하는 震은 반드시 稼와 같이 反生하고 反生하기 以前은 艮이니 石에 介한다 함은 生의 中心인 六二에 震으로 反生할 艮이 있어 成終成始의 作用을 行한다 함이다.

 
不終日이라 함은 日이 終치 아니한다 함이니 六二에는 震子의 反生하는 幾가 있고 艮으로부터 震이 反生하는 것은 晦月이 初生月로 反生하는 象이오 이는 九四의 奮出하는 震子는 下로는 互艮이 되어 晦月의 象이 되고 上으로는 震이 되어 初生月의 象이 되는 까닭이며 달은 太陽의 終하는 位에서 生하고 太陽은 三爻에서 終하는 것이므로 乾卦九三에 終日夕惕과 可與幾 可與存義의 象이 있는 것이며 豫卦도 六三의 位에서 太陽이 終하고 달이 生하는 것이나 六二에 달의 生하는 幾가 있어 六三의 日終을 俟치 아니하고 이미 달이 生하니 이가 不終日의 뜻이다.

 
貞吉이라 함은 保合하여 生命의 生한다 함이니 震子가 生의 中心에서 生하고 있으므로 貞吉이라 한 것이다.
幾는 달의 光明의 始生하는 幾微이오 知幾其神乎라 함은 繫辭의 「神以知來」라는 뜻으로서 六二에서 달이 그 生하는 幾微가 있음을 知하는 것이 곧 神한 것이라 함이니 이는 日月의 政이 至神至明한 까닭이다. 諂은 사람의 氣가 坎地에 陷함이오 瀆은 坎의 溝瀆으로서 水土의 混함이니 豫卦는 大坎의 象이 되어 上諂下瀆하는 象이 있으되 雷가 艮石에서 動하여 奮出하고 있으므로 上을 交하되 氣가 諂치 아니하고 下를 交하되 水土에 混瀆치 아니하니 이는 幾를 知함이 神한 까닭이다. 幾라 함은 動하는 幾微로서 朔日의 先現함이오 吉은 朔日이니 이는 震子가 反生하여 朔日이 됨을 말함이오 달은 六二에서 幾微가 動하여 六三의 日終하기를 기다리지 아니하므로 朔日이 先現한다 한 것이다.

 
爻辭에는 介于石이라 하고 解釋에는 介如石이라 하니 介于石이라 함은 成終成始하는 艮山에 界한다 하여 그 處位를 말함이오 介如石이라 함은 界함이 成終成始하는 艮山과 같다 하여 그 終始하는 作用을 말함이며 斷이라 함은 異段事를 裁하여 一로 決하는 것이니 終에서 始하는 兩段事를 裁하여 달을 生하는 一事를 決하는 것이 곧 介如石의 뜻이다.

 
微는 動의 微로서 未來라는 뜻이오 彰은 彰往으로서 過去라는 뜻이니 知微知彰이라 함은 時間의 未來와 過去를 知한다 함이오 柔剛은 地道의 柔剛으로서 天道陰陽의 뜻이니 知柔知剛이라 함은 空間의 陰과 陽을 知한다 함이다. 望은 月幾望의 望으로서 陰精이 陽의 光明을 受함이니 萬夫之望이라 함은 乾卦의 「聖人作而萬物覩」의 뜻으로서 萬人이 君子의 光明을 望함은 달이 太陽의 光明을 望함과 같다 함이다.

 
君子 知微知彰知柔知剛 萬夫之望이라 함은 豫卦는 河圖의 生의 時運으로부터 洛書의 長의 時運으로 變하는 象의 卦로서 달도 長의 象으로되고 사람의 精化의 씨도 豫卦의 달에서 地로 下來하여 形質을 成하는데 씨는 반드시 男體에서 生하는 것이므로 豫卦에서 下來하는 씨는 곧 震子로서 精子의 象이 되고 그것이 地에 下來하면서 男女로 分化한 것이니 君子는 달의 象이오 知微知彰은 河圖時運의 過去로부터 洛書時運의 未來로 向한다 함이오 知柔知剛은 陰精으로서 太陽의 光明을 受한다 함이오 萬夫之望은 夫는 男體라는 뜻으로서 달에서 生하는 사람의 씨는 모두 男體의 精子이라 함이오 望은 달의 光明을 受한다 함이니 이 爻는 달의 光明으로써 君子의 光明에 擬하여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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